ACTION
실천
그럼에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우리의 실천은 이어진다.
기후정의를 향하는 느슨한 연대감은
우리의 실천을 지속시키고,
일말의 다정함은 우리를 좌절로부터 구제한다.
용기와 평안

친구가 열었던 작은 생일파티에서 얻은 팔찌, 그곳에서 얻어낸 문구입니다. 그곳에는 기후나 소수자에 대해 얘기하고, 물품을 나누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공간에서 용기와 평안을 조금 얻어가요.
그러니까, 서로 모르는 사람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같은 세계관을 조금씩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렇게, 마주하는 장면들을 저는 되게 좋아하거든요.
은평전환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충동

학교 강의에 은평전환마을 활동가선생님이 특강을 오셨습니다. 그동안 이런 불안정한 기후와 시시각각으로 ‘망했다’는 감각 이 느껴지는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함께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페미니스트가 에코페미니즘까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경험적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마침 이사를 가게 되어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차라, 은평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마을을 중심으로 또 하고 계신 분들이 많지만,
특히나 우리 2~30대의 경우에 마을이 없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보통 떠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하지?
이런 생각을 되게 항상 오래 해왔는데,
참 여전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getting empathy from sympathy

연구에 참여하면서 기후에 대한 저의 감정을 좀 더 면밀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전에는 위선으 로만 바라봤던 동정들이 나름의 공감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여전히 나와 같은 기후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불안”을 걱정하는 것. 그들의 sympathy는 나름의 empathy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던거죠. 그러면서 예전에 친구들이 제 불안에 대해 코멘트 했던게 달리 느껴졌습니다. 그저 형식적인 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마음은 마음이구나. Sympathy든지 empathy든지 pathos는 pathos구나.
고마움과 동시에 점점 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평생 겹치지는 않겠구나, 우리가.
동네 옥상

한창 놀러다니던 친구네 집 옥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기후위기에 대한 불안은 상실에 대한 불안, 혹은 ‘돌아갈 곳이 없는’ 불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때 친구집에 자주 놀러다니고 옥상에서 바람도 쐬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참 평안했어요. 고요하고 편안한, ‘돌아갈 곳’을 찾고 있었는데 참 다행인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내가 나를 막 설명하지 않고,
나를 너무 드러내는데, 드러내는 것도 전 노동이라고 생각하든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저는 되게 편안한… 편안함이 그런 데서 나오는 것 같아요.
냥이

친구네 집 룸메인 냥이에요. 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찍었어요. 반려동물과 함께살았던 적이 없어서 비인간동물과 교감했던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친구집 냥이와 자주 만나고 놀면서 청소도 도와주고, 먹을것도 챙기는 시간이 저에게 특별했습니다. 기후위기를 알고 공부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맺기에 대해 읽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막상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조금은 난감했거든요. 친구집 냥이와 교감하고 지내며 인간 밖 다른 존재와 관계맺기에 대해 묘한 생각이 들었던, 인상 깊은 순간이었습니다.
내 불안함이, 단순히 막연했던 불안함이
조금은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을 배우고
그 시점을 배움, 학습함으로써 (불안함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지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는 발레를 좋아하고 이 사진을 찍은 날에는 Pale과 공연을 보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어요.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땅이 안전하길 바라요.
예술이 세상을 변혁적으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분명 존재한다.
라고 얘기를 하셨거든요.
SVOC

Semi-volatile organic compound 는 흔히 유해 화학종이라고 불리는 기체 상태의 화학물질이에요.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화학종이 연구되어야 하는 것이 현 상황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공동체가 됐든 혹은 조금 넓게, 좁은 공동체가 아니라
어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던 건지 간에.
그래서 각자가 맡는 어떤 역할이 있는데,
그래서 나는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하고 갔지? 이런 생각도 하고.
엄마가 먼저 꼬드겼어요

엄마가 조계종 근처 식당에 비건 잔치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먼저 제안하였습니다. 그동안 비건 식사를 최대한 실천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맛있는 비건식당을 발견하면 종종 엄마와 함께 가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엄마가 먼저 비건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말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면서도 이게 맞는 일일까, 이걸로도 충분할까, 하는 우려가 튀어나오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이러한 동행은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음식하고 이렇게 공동체 모임을 하고, 관련된 연구를 하고,
이렇게 파이을 키우는 게 기후 위기나,
어떤 다른 운동들이 나아가야 되는.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대응하는 방법은 파이를 늘리는 거,
그게 아닌가.
즐거운 집들이

기후위기를 고민하고 생각하다보면 이길 수 없는 무기력에 압도 당하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세상이 주저 앉힌 저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제겐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인 것 같습니다. 친구 집들이에 갔 습니다. 참석자들 중 채식지향, 비건이 있어서 그날은 모든 음식을 다 비건으로 요리했습니다. 시장에서 산 달래로 된장국을 끓이고, 당근과 감자로 카레를 만들었습니다. 안주는 비건 치즈스틱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고민들을 풀어놓고 한바탕 웃고나니 살아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비건인 사람이 소외되지 않고, 기후위기에 대한 피로감, 두려움,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감사했습니다. 대체불가능한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친구가, 한 명이라도 애초에 그냥 논비건이든 비건이든 간에,
그냥 단체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무조건 비건을 하자.
라고 제안을 해줬고, 그래서 모든 식단이
전부 싹다 올비건으로 변했어요.
그 과정에 있어서 정말…
안전하고 거기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그때 참 좋았고, 내가 앞으로 소속되는 공동체,
내가 이야기를 할 공동체에서도 이걸 내가 얘기를 해도 되겠다.
열매는 예뻐요!

친구들과 올림픽 공원 근처를 걸었습니다. 날이 좋았고, 초록의 그늘 아래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니 나른하고 따스했습니다. 걷다가 우리는 재밌는 문구를 만났습니다. ‘잠깐….. 열매는 예뻐요. 사랑합니다.’ 처음에는 길 중간에 등장한 커다란 문구가 궁금했고, 읽다보니 뜬금없는 문구에 웃음이 났고, 나무와 들풀들이 솟아있는 이 길목에 이런 문구를 쓴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괜히 간지러운 감각이 마음에 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열매를, 이 길을, 그리고 이 문구를 읽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고, 어떤 벅참을 전해준 이 문구와 열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기후위기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하고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톡 건들 수 있는 글, 그림들을 길목에서, 일상에서 더 많이 쓰고 나눈다면 어떨까요? 누군가는 열매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고, 누군가는 열매를 더 사랑하고 감사하겠죠. 그런 마음들이 모여 기후위기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합니다.
친구가 가족이랑 아파트에 살아요.
근데 자기 책을 이렇게 박스에다가 넣고 그걸 엘리베이터에 둔거예요.
가져가세요, 원하시는 것 있으면.
엘리베이터 나눔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약간… 이것처럼, 도시가 정 없다고 하셨는데, 그것처럼,
그 와중에서도 그렇게 엘리베이터 나눔 하는 사람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생필품 같은 것도 넣어주고,
사람들이 가져가더라고요.
저는 되게 뭐랄까, 표현이 이상한데
좀 어처구니 없는 다정함이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