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AT
위협인식
홍수, 태풍, 폭염 등 심각해지는 기후사건과 환경오염은
되돌릴 수 없는 기후위기에 의해
우리의 미래가 불분명하다는 불안을 가중시킨다.
위협은 당도했으나
대응할 수 있는 공동체도, 공감도 존재하지 않고,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나는 한없이 작을 뿐이다.
일상의 상실
.jpg)
날이 풀리면 실내에서 런닝머신을 타는 것보단 집 근처 하천에서 뛰는 걸 선호해서 주기적으로 갔었어요. 그런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록적인 폭우가 왔다는 말이 들리더니, 서울 대부분이 잠기고 심지어는 사망자까지 발생했다는 뉴스가 뜨더라고요.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지 않아서 사건이 심각한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감이 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때는 기후 재난으로 인해 으레 하던 것을 못해, 제 일상을 빼앗겼다는 우울감이 컸습니다. 그리고 하천에 물이 빠지고 난 뒤 다시 방문해보니 안전바가 뽑혀 있었어요. 용접을 해서 붙여놨던 쇳덩이가 뜯겨서 뽑힐 정도임을 인식한 순간 이 모든게 너무 공포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심리적 불안이었던것이 실질적 위협으로 변한 날이었어요.
저한테 기후위기는 늦은 밤에 자취방에 혼자 있는데
자꾸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아요.
근데 그 누군가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 실체를 모르겠고,
근데 자꾸 문을 두드리는데 왜 두드리는지도 모르겠고,
근데 그냥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내 공간에 침입을 할 것 같은데, 그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별

서울 지역으로 캠핑을 갔는데 별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고요. 도심에서도 이렇게 별이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놀라웠어요.
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게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여가지고
그런 미지에 대한 불안감이 또 반대로 모순되게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간지러워 잠을 못자요

저는 아토피 환우입니다. 갓난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일생 전반을 아토피와 함께 살아왔네요. 매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아토피가 심해집니다. 작년에는 유독 아토피로 고생을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이상하게 손이 가려웠습니다. 밤이 찾아오면 온 몸이 열로 달궈지듯 뜨거워고 손가락 사이들이 미친듯이 가렵습니다. 헐떡이는 호흡에 손을 긁다보면 이 고통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삶이 주는 따뜻한 감각들이 아토피의 열로 인해 증발하고, 아토피라는 질병에 지배되는 순간들이죠.
이 사진을 찍던 날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날밤을 새면서 아토피에 대해 오래 생각했습니다. 아토피는 대체 왜 내게 왔을까? 무엇으로 이 질병이 시작된 것일까? 질병은 이토록 쉽게 사람을 무너뜨리고 죽이는데, 그리고 수많은 아토피 환우들이 있는데, 우리는 왜 아토피에 대해서 더 많이 얘기하지 않는 것일까? 이 질병은 왜 치료되지 않는 것일까?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고, 결국 오염된 지구, 파괴된 환경에서 먹고 마시는 생명이기에 아토피라는 질병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온전하고 푸른 자연 속에서 더이상 가렵지 않았고,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은 날 종일 긁었던 기억들이 스쳐갔습니다. 기후위기는 나의 피부에 녹아있다는 것, 내가 오늘 인간으로서 망가뜨린 어떤 자연이 결국 나를 망가뜨리러 왔다는 것을 생각했고 많이 슬펐습니다.
뭔가 질병, 취약함? 질병이든 기후위기든 뭐든 취약함이 됐을 때,
그러면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일도 많이 안 해도 되는 삶을...
살게 되면 이거를 버틸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을 또 하기도 하고.
근데 그러면 이게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또 동시에 하는.
이상하게 따듯했던 생일날

겨울을 굉장히 좋아해요. 생일도 한겨울에 있어서, 생일을 떠올리면 입김이 가득 나오고 손, 발, 귀, 코끝 같 은 곳들이 발갛게 얼어붙어서 친구들과 동동거리며 펭귄 마냥 둥글게 껴안고 걸어다니던 기억이 있었어요. 그런데 2020년도의 생일에는 공기가 훈훈했어요. 무서웠어요. 그 이후 생일날마다 그 날을 떠올리게 됐던것 같아요. (2020년 생일과 2021년 생일)
일종의 아포칼립스 같은 상황이... 바로 전환되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 끓는 물 속의 개구리 같은 삶을 살게 될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저는 진짜 솔직히 미래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일종의... 체념을 한 거 같아요.
친환경

전철역에서 본 전광판 문구입니다. ‘지구온도 1.5도 저하’ 라는 말이 어이없고 슬퍼서 찍었어요.
지구평균기온이 산업화 이후 상승하고 그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해야한다~ 라는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이 친숙하지 않거나 헷갈릴 수는 있지만, 공기업의 캠페인 문구에서도 저런 어이없는 오류가 보이는게 허탈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저도 많이 생각을 하는데.
약간 이런... 여론에서 지지 않고 내가 그냥 어떤 뭔가 신념?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유연함과...
저는 어떤 거리감을 두는 것과,
되게 자기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 어떤,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되게 많이 생각을 했는데.
검열

제가 첫 기후불복종 행동을 한 뒤 언론보도에 달린 댓글이에요. 지금은 저런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반 응이 멉거나, 슬픈 감정이 들지 않아요. 그런데 저때 당시에는 저런 반응이 조금 충격적이었어요. 나는, 그리고 함께한 동료들은 정말 절박했는데, 모두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 행동이 검열당하고 비난받아야 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전 단순하게 기후위기가 모든 것에 앞서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지금은 이러한 사실에 절망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조금 우울했던 기억입니다.
그러니까 불화를 일으키려는 사람과 그 불화를 조율해서
중간 지점에서 뭐가 가능할까라는 거를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되는데,
말 그대로 한 사람만 불화를 일으키게 되면 그냥
그 사람 저 사람 이상한 사람. 불편한 사람.
여기서 피곤함을 일으키는 사람으로만 찍혀버리는 거니까.
한 치

좋은 벗과 새벽녘까지 놀았던 날의 아침 풍경이에요. 김포에는 안개가 많이 끼지만 유난히 심했던 날. 밤새 즐겁게 놀더라도 아 침엔 무언가 흐릿한 미래를 마주하는 시간 같아서. 그 사이로 출근하던 사람들 속에서도.
문이 좁아지겠죠.
그러니까 그게 수면 상승이든 기온의 상승이든 간에.
죽어 나갈 사람들은 죽어나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기저에는 깔려 있었던 것 같아요.